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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19-08-20 18:34 (화)
추사가 사랑한 수선화, 제주도 물마농
추사가 사랑한 수선화, 제주도 물마농
  • 최정선 여행작가
  • 승인 2019.0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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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선 여행작가와 함께 '어디든'] 제주 서귀포

'내가 본 진짜 통영', '생각없이 경주'의 저자인 한국여행작가협회 최정선 작가의 여행 에세이입니다. - 편집자주

혹독한 한파를 뚫고 1월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핀 수선화.
혹독한 한파를 뚫고 1월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핀 수선화.

제주도에선 1월에 피는 수선화를 새해가 시작됨을 알리는 꽃으로 여긴다. 수선화가 곱게 필 때쯤 동백꽃이 지천이지만 동백꽃은 지난해 겨울부터 피고 지기를 반복하다 봄에 그 수명을 다한다.

제주도에서 그 많은 꽃을 제치고 어느새 수선화가 새롭게 시작됨을 알리는 꽃이 됐다. 하얗고 노란색이 적절히 어우러진 수선화는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부지불식간에 핀다.

제주도 수선화를 문뜩 보고 싶었다. 작년 늦은 봄에도 수선화를 찾아 제주도에 갔다. 그땐 시들어 꽃대만 남은 녀석을 보고 돌아서야 했다. 시간을 맞추지 못한 아쉬움에 몸부림쳤다.

제주도에서 수선화가 먼저 피는 곳이 서남부에 있는 대정읍이다. 어디에 피어 있는지 찾을 필요가 없다. 길 곳곳에 피어 있다. 그래도 꼭 집어 말하면 대정읍에 있는 추사관을 비롯해 대정향교, 대정 들녘, 알뜨르비행장, 산방산 근처에 많다.
 
1840년(헌종 6) 제주로 유배 온 추사 김정희가 유독 수선화를 좋아했다. 그 당시 문인들은 한겨울 벗으로 세한삼우(歲寒三友) 중 매화를 꼽았다. 하지만 추사는 매화를 제치고 수선화를 남달리 사랑했다. 몰아친 한파를 이기고 꽃을 피운 소박한 식물이 자신의 처지와 닮아 그런 듯.

조선 때 중국 북경에서 알뿌리를 가져와 키운 꽃이 수선화다. 한마디로 귀한 꽃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유배 온 추사 김정희가 담벼락과 밭둑, 길가에 수선화가 지천이라 놀랐다고 한다.

더욱 그를 놀라게 한 건 이곳 사람들이 잡풀로 여겨 뽑아버렸다는 점. 당시 제주도민들에게는 농사 지을 땅에 올라오는 잡초와 같은 귀찮은 존재였다.

수선화가 도떼기 시장처럼 추사관 담장 아래에 흔들리고 있다.
수선화가 도떼기 시장처럼 추사관 담장 아래에 흔들리고 있다.
추사관의 추사 김정희 동상.
추사관의 추사 김정희 동상.

수선화와 조우하고자 그 첫발을 디딘 곳이 추사관이다. 작년에 왔을 때 한 녀석만 반겼는데 오늘은 여러 녀석이 활짝 웃고 있다.

엊그제 제주도에 눈 소식이 있어 수선화가 혹여 피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가 극에 달했는데… 도떼기시장처럼 담장 아래에 흔들리고 있다. 15도로 고개를 숙인 수선화 향이 코를 자극한다. 향이 짙다.

날렵하고 긴 잎 사이의 꽃대에 대롱 달린 수선화는 흰색 바탕에 연노란 빛이 청초함을 더한다. 줄기 사이에 굵은 대가 솟아, 그 끝에 네댓 송이 꽃이 달렸다. 그 모습이 얼핏 난(蘭)과 비슷하다. 그리고 향도 닮았다. 등나무꽃 향인 듯, 어렵게 핀 풍란의 향을 닮은 듯 아리송하다.

수선화는 제주도와 거제도에서 볼 수 있다. 거제도 공고지의 노란 수선화는 크고 화려하지만, 제주도 수선화는 작고 앙증맞다. 거제도의 수선화는 '금잔옥대', '금잔은대'라 부른다. 부화관이라고 하는 황금색의 꽃잎을 하나 더 가지고 있어 그렇다.

제주도에서는 수선화를 ‘몰마농’이라 부르는데 ‘몰’은 동물인 ‘말’이란 뜻한다. 그래서 ‘말이 먹는 마농(마늘)’이란 의미도 있지만, ‘크기가 크다’라는 숨은 뜻도 있다. ‘뿌리 크기가 큰 마늘’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어쨌든 '수선화의 제주 토속어 뜻'에 대한 논의가 있다는 자체가 제주에서 수선화가 중요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수선화는 지중해 연안에서 중국의 남쪽 지역이 원산지다. 그리스 신화에 나르시스라는 미소년이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하염없이 들여 보다 물에 빠져 죽는다. 그가 죽은 호수에 나르시스를 닮은 꽃이 피어난다.

그 꽃이 수선화다. 이 꽃은 물가에만 자라는 꽃이 아니라 서양의 전설처럼 ‘물을 사랑하는 꽃’이다. 그래서 돌담이 겹겹이 쌓여있는 돌무더기나 길가의 버려진 땅에서도 잘 자란다.

수선화를 찾아 다시 발길을 송악산으로 갔다. 미리 검색한 빛바랜 사진 속의 수선화를 찾아봤지만 허탕이다. 사계리 해안도로를 천천히 돌았다. 차 안에서 눈알을 굴려 가며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설픈 조사 덕에 허탈해 혀만 끌끌 차게 된다.

하멜기념비까지 조성된 길에 조우한 고개 숙인 수선화.
하멜기념비까지 조성된 길에 조우한 고개 숙인 수선화.

산방산으로 갔다. 하멜기념비까지 조성된 길을 천천히 걸었다. 바람이 매섭다. 못 만날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제주의 산방산을 올려보는 꿋꿋한 수선화가 보인다. 살을 에는 바닷바람에 흔들림 없이 고고한 자태로 야멸차게 나를 본다.

그렇게 겨우내 언 땅을 꼿꼿하게 지키던 수선화도 춘삼월이 되면 노란 유채꽃에 바통을 넘겨줄 것이다. 제주도의 땅은 한라산 부근만 겨울나라지 한겨울도 봄이다. 추사 김정희가 사랑한 만큼 대중들에게 봄꽃으로 사랑받지 못해 애석하다.

서쪽에서 수선화를 봤다면 동쪽은 어떨까. 성산 일출봉으로 갔다. 제주도에서 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인데 수선화가 아직 피지 않았다. 하늘만 잔뜩 찌푸려 있다.

성산일출봉의 수선화는 꽃대만 늘어뜨린 채 아직 피지 않았다.
성산일출봉의 수선화는 꽃대만 늘어뜨린 채 아직 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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