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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19-02-21 23:07 (목)
실핏줄처럼 얼기설기한 통영 선창길
실핏줄처럼 얼기설기한 통영 선창길
  • 한국여행작가협회 최정선 작가
  • 승인 2019.0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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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선 여행작가와 함께 '어디든']

 

통영 선창길. 서피랑의 산 역사, 선창 골목은 대궐 같은 적산가옥과 통제영 성곽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다.
통영 선창길. 서피랑의 산 역사, 선창 골목은 대궐 같은 적산가옥과 통제영 성곽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다.

'내가 본 진짜 통영', '생각없이 경주'의 저자인 한국여행작가협회 최정선 작가의 여행 에세이입니다. - 편집자주

곤한 늦잠을 깨우는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지인의 전화로 대뜸 선창길을 걸어보잔다. 허튼소리 안 하는 분이라 두말하지 않고 가겠다고 했다. 나는 바깥사람이 공인한 베짱이다. 내가 계획한 일이 아니면 집 밖을 나가길 싫어하는데 얼른 약속장소로 갔다. 두서너 분이 계셨다.

항구도시는 배가 닿는 선창 주변이 가장 번성한다. 서피랑 부근의 ‘선창골먼당’으로 연결된 ‘선창1길’은 그런 곳이다. 조선 통제영 시대에는 각종 군수물을 저장하는 창고가 즐비해 선창골(船倉洞)이라 명명했고,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는 길야정(吉野町, 요시노마치)란 일본식 지명으로 지칭됐다. 선창골이란 말로 미루어 짐작하겠지만 이곳 아랫동네는 뱃사람의 땀이 베여있는 곳이다.

선창골의 시작점인 오행당 골목은 고요하다. 이 거리는 항남동 명성레코드(항남1번가길 35)에서 파리바게트(항남1번가길 5)까지 약 180m 구간이다. 한때 통영의 항남 1번가로 서울 명동이나 부산 광복동에 버금가는 곳이었다. 또한 한국 시조문학의 대가인 초정 김상옥(金相沃, 1920) 선생의 생가가 있던 곳으로 지역 시조문학 발상지다.

과거에는 오행당 병원과 희락장 등 유명한 상가가 있어 일번지로 손꼽혔다. 많은 통영의 문학가들이 사랑한 골목이자 문학의 발상지라 하겠다. 하지만 대부분 점포가 매매 안내판을 윈도우에 내걸어 아쉬움이 느껴진다.

항남1번가 오행당 골목.
항남1번가 오행당 골목.
초정 김상옥 생가터.
초정 김상옥 생가터.

본격적으로 파리바게트 사이의 한산한 좁은 골목을 따라 걸었다. 그 흔한 길고양이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다. 길을 걷는 동안 침묵이 흐른다. 옛 모습 그대로 살아 있는 골목이 사라질 위기에 마음이 아픈 듯하다. 선창길 걷기를 제안한 지인은 도로가 계획되고 동피랑처럼 벽화가 도배되는 걸 못내 슬퍼했다.

서피랑은 일제강점기 신분 높은 일본인이 살았던 거주지다. 서피랑을 실핏줄처럼 연결한 선창 골목마다 대궐 같은 적산가옥들이 더러 보인다. 얼마 전에 탐독한 소설 '곰탕'이 생각난다. 허리케인이 휩쓸고 간 미래에는 부자들이 높은 지역에 살고 가난한 사람들은 바닷가의 질퍽한 진흙탕에 집을 짓고 산다는 설정이 불현듯 뇌리를 강타한다.

일제강점기의 일본인들은 높은 지역을 선호했다. 서피랑도 그들이 선호한 지역이다. 여러 설이 있지만 수산물 수출지인 통영항의 선창과 가까운 곳이라 선호했을 듯하다. 골목길 사이로 통제영의 성벽들도 온전히 남아 있다.

통영 선창길. 서피랑의 산 역사, 선창 골목은 대궐 같은 적산가옥과 통제영 성곽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다.
통영 선창길. 서피랑의 산 역사, 선창 골목은 대궐 같은 적산가옥과 통제영 성곽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다.
통영 선창길.
통영 선창길.

선창골먼당과 연결된 서호동의 높은 곳인 ‘베락당먼당’(벼락당)에 섰다. 아득하게 명정골이 펼쳐진다. 이 마을에 애틋한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의 주인공은 백석이 사랑한 명정골 천희(千姬)다. 백석은 세 차례에 걸쳐 통영을 다녀갔다.

당시 조선일보 기자였던 백석은 1935년 6월 초에 절친한 친구 허준의 결혼식 축하 모임에서 이화여고 학생이던 박경련을 유심히 본다. 박경련은 같은 신문사 동료인 신현중의 누나에게 가르침을 받던 중이었다. 백석은 스물넷, 박경련은 ‘난(蘭)’이라 불렸던 열여덟 꽃다운 처녀였다.

허준의 신부 신순영은 서대문 죽첨보통학교 교사로, 허준의 단짝이던 신현중의 여동생이었다. 백석은 난과 안면을 튼 신현중을 부추겨 함께 허준의 통영 신혼여행을 따라나섰다. 마음을 설레게 한 여인을 다시 보고 싶어 통영으로 간 것이다. 하지만 백석은 통영까지 와, 그녀가 살던 집 근처만 배회하고 만나지 못했다. 그의 심정을 노래한 '통영'이란 시 세 편에 그의 마음이 잘 전달돼 있다.

퇴적된 오랜 시간과 사연들이 빛바랜 지붕으로, 때로는 민낯의 담으로 이 골목이 오랫동안 살아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말을 걸어오는 아름답고 정다운 이 길을 많은 이들이 걸어, 지금 모습 그대로 보존되길 소망한다.

싸리눈 내린 선창골먼당과 연결된 서호동의 베락당먼당(벼락당).
싸리눈 내린 선창골먼당과 연결된 서호동의 베락당먼당(벼락당).
통영 선창길.
통영 선창길.
통영 선창길.
통영 선창길.
통영 선창길.
통영 선창길.
통영 선창길.
통영 선창길.
통영 선창길.
통영 선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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