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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19-09-02 15:27 (월)
제주에서 오직 지금만 남길 수 있는 '인생사진'
제주에서 오직 지금만 남길 수 있는 '인생사진'
  • 최정선 여행작가
  • 승인 2019.0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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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수국 탐나 - 동남부 편] SNS에 '수국길' 검색하면 꼭 나오는 곳에 가다

꽃은 시기를 가름하는 척도다. 척박한 겨울이 가고 봄을 알리는 첫 신호탄으로 꽃이 피면, 사람들은 들뜬 마음으로 꽃구경 간다. 봄꽃만 꽃은 아닌데도 꽃놀이는 봄이 최고라 다들 생각한다.

그 생각은 넣어뒀으면 한다. 여름 꽃놀이는 길다. 봄꽃은 일주일을 넘기기가 힘든데 여름꽃은 한 달간 핀다. 그 대표주자가 수국이다. 연꽃과 해바라기가 그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지만, 수국만큼 풍성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줄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요즘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수국, 수국' 한다. 수국의 성지로 제주, 거제, 부산이 거론된다. 최근 해남, 신안도 수국 축제를 열어 수국 열차에 탑승했다.

제주에는 여행자들을 반겨줄 수국 명소들이 많다. 바로 지금, 파스텔톤의 수국들이 초여름의 제주 곳곳을 물들이고 있다. 수국은 토질에 따라 색이 달라져 '도깨비 꽃'으로 불린다.

올여름, 수국에 푹 파묻혀 웃음꽃 핀 자신을 상상하며 제주로 여행을 떠나보자.

물 흐르듯 수국이 핀 세상, 남국사

독지 새미(우물)에서 발원된 물은 남국사 경내의 인공 분수를 채우고 있다. '물 흐르듯 흘러가라'라는 비문도 그 뜻을 돋운다. 이 말귀가 가슴을 울린다. 바로 옆으로 넓고 푸른 잔디밭과 그네가 덩그러니 있다. 아무래도 불도를 닦는 곳이라 조용히 예의를 지키는 게 우선일 듯.

특히 매력적인 포인트는 남국사 법당으로 가는 길에 소박하게 핀 보랏빛 수국이다. 연보라색에서 하얀색으로 색을 갈아입는 수국의 모습은 불심이 깊어 가는 불자를 닮은 듯하다.
 
경내를 벗어나자 잘 다듬은 길이 나타났다. 그 길을 따라 산수국이 웃는다. 수국 너머로 녹차 밭이 눈에 들어온다. 녹차 밭 옆 삼나무 길에도 수국이 어우러져 있다. 삼나무와 보랏빛, 하늘빛 수국이 어우러진 곳으로, SNS에서 인기몰이 중인 포토존이다.

싱싱한 느낌 한가득, 보롬왓

보롬왓은 서귀포 표선과 제주시를 잇는 중산간에 있다. 제주 방언인 보롬왓의 '보롬'은 바람, '왓'은 들판을 의미한다. 가축들이 마음껏 돌아다니며 풀을 뜯는 '바람의 들판'으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봄·가을에는 메밀꽃, 여름에는 수국과 라벤더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과거엔 농사짓기도 힘든 불모지였다. 메밀이나 보리 등 생육이 강한 농작물이 아니면 힘든 곳이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메밀을 경작해 왔던 곳으로 메밀꽃의 명소다. 최근 농로로 쓰던 좁은 오솔길에 수국이 만발해 새로운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그 길이 무려 2km나 된다. 자연 그대로의 흙길을 걸으며 수국과 삼나무를 즐길 수 있다.

제주 수국의 대표주자, 종달리 수국길

제주도 동쪽 끝, 숲속의 가수왕 종다리가 모여 살 것 같은 예쁜 마을이 있다. 바로 제주시 구좌읍의 종달리(終達里)다. 작은 새들이 날아와 노래할 것 같은 동화의 세계가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 곳곳에 펼쳐진다. 수국이 도로를 점령해 낙원으로 변모했다.

아기자기한 마을, 종달리가 요즘 뜨겁다. 이미 올레길 순례자들 사이에 숨은 명소이기도 하지만 최근 수국으로 몸값을 올리며 유명세를 타는 중이다. SNS에 '제주 수국길'이라고만 검색해도 '종달리 수국길'이 뜰 정도로 종달리는 제주 수국의 대명사가 됐다. 종달리는 한때 유명한 소금 생산지였다. 종달리 옛 소금밭 길이 그 옛날 번성을 짐작케 한다.

풍성하고 화려한 매력의 수국은 육지에서 '비싼 꽃'이다. 나의 웨딩 부케도 수국으로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수국이 유난히 좋다. 온화하고 비가 많고 습한 제주의 날씨 탓인지 수국이 지천이다. 물을 좋아하는 수국의 특성 때문인 듯.

돌담과 어우러진 수국, 혼인지

혼인지의 옛 이름은 '열온', '열운'이다. '연 곳' 또는 '맺은(결혼한) 곳'이라는 뜻이다. '열운이 마을'이 한자로 바뀌면서 여온리(與溫里)가 됐다. 그 이후 온평리(溫平里)로 고쳐졌다. 지명에서 어림짐작할 수 있듯, 탐라국 신화와 연결점이 있다.
 
제주에 탐라국 건국 신화로 온평리의 '삼성신인'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고을라·양을라·부을라의 세 명의 남성이 한라산 북쪽 기슭 삼성혈에서 나온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동해에서 떠내려온 나무상자 안의 석함에서 벽랑국 공주 세 명이 발견된다. 삼성혈에서 나온 삼신과 벽랑국의 세 공주는 800여 평의 연못인 혼인지(婚姻池, 지방기념물 17호)에서 혼례를 올린다.
 
혼인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출입문을 통과했다. 천천히 동선을 확인한 후 곱게 정돈된 포도를 걸었다. 갑자기 구름이 잔뜩 끼더니 보슬비가 내린다. 전부터 나는 거추장스러운 걸 싫어한다. 비가 와도 그냥 빗속을 걷는 편이다. 활짝 핀 수국을 한적하게 감상하며 이리저리 걸었다.
 
누군가 마침 혼인지에서 웨딩 촬영 중이었다. 신화 속 이 공간은 결혼식이나 전통혼례를 올리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실제로 이곳에선 제주만의 전통혼례가 진행되기도 한다.

키를 훌쩍 넘는 푸른 수국길, 위미리

위미리는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이다. 위미의 옛말은 '우미, 뙤미, 뛔미'다. 위미(爲美)의 한자는 위할 위(爲)에 아름다울 미(美)이다. 지명에 '아름다움'이 들어가서인지, 풍경이 아름다운 마을이 분명하다. 사실 위미는 논어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인위미(里仁爲美) 택불처인(擇不處仁) 언득지(焉得知)'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어질고 후덕한 마을에서 사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인후(仁厚)한 곳을 가려 거처하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라는 뜻이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3리 일주도로에는 수국이 수 미터의 짧은 구간에 피어 있는데, 이 곳을 찾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나도 그중의 하나였으니 말할 필요가 없다. 제주지역 도로변 곳곳에 수국이 만발하면서 '인생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잇따르고 있다. 이국적인 수국이 길가에 도열해 요정이 나타날 것 같은 곳이다. 제주 곳곳에서 수국의 꽃망울 틔우는 소리가 소곤소곤 들린다. 봉숭아 씨앗 터지듯.

위미리의 푸른 수국은 제주 바다를 닮았다. 키를 훌쩍 넘는 푸른 수국으로 유명한 곳이다. 수국에 파묻혀 인생 사진 남기는 낭만이 그만이다.

수국의 변신은 무죄, 휴애리자연생활공원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살포시 내려앉은 안개 사이로 형형색색 솜사탕 같은 수국 풍경이 발길을 부여잡는다.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색은 솜사탕 같은 수국의 매력이다. 휴애리자연생활공원에서도 수국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휴애리는 '쉴 휴(休), 사랑 애(愛), 마을 리(里)'로 '휴식과 사랑이 있는 곳'이다.
 
수국 올레길, 수국광장, 수국정원, 수국 오름 등 휴애리자연생활공원에는 수국이 지천이다. 알록달록한 구름 속을 걷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수국이 빚어낸 색의 향연은 휴애리자연생활공원을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만들었다.
 
특히 휴애리 수국정원은 화산 송이와 어우러져 제주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 놓은 특별한 정원으로, 천천히 걸으며 수국을 감상할 수 있다. 수국향과 더불어 우거진 숲과 대나무 사이로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이 곳에서 펼쳐지는 수국 축제에는 수국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도 넘쳐나 방문객들의 흥을 돋운다. 특히 셀프웨딩 등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곳곳에 세트장을 설치해 추억을 남기기 좋다.

*마음이 머무는 벵디1967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은 집이다. 집처럼 머물 수 있는 안식처를 찾아 여행자들은 헤맨다. 자신의 오롯한 시간을 기대하며... 여행지를 누비는 만큼 머무르는 공간에 대한 기대도 크다. 바로 제주 여행에서 만난 ‘벵디1967’이 그런 곳이다. 아담하지만 그림처럼 아름다운 해변과 제주 토속적인 옛집들이 많은 제주 구좌읍 평대리에 있는 공간으로, 제주의 바람과 돌, 꽃이 노래하는 편안한 안식처이다. 주인장은 제주에서 운명처럼 모든 걸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 덜컥 섬 생활을 결정했고. 그가 머문 곳에 ‘벵디1967’이 탄생했다.

<제주 서남부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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