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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19-09-02 15:27 (월)
노부부가 직접 심고 가꾼, 제주의 특별한 수국길
노부부가 직접 심고 가꾼, 제주의 특별한 수국길
  • 최정선 여행작가
  • 승인 2019.0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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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수국 탐나 - 서남부 편] 산방산을 배경으로 수국을 감상할 수 있는 곳

<제주 동남부 편에서 이어집니다>

'감성'이 여행의 핵심 테마로 부상하고 있다. 여행지에서 SNS에 올릴 사진을 찍는 사람들 역시 저마다의 감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 등에 내걸린 감각적인 내 여행 사진을 보고 모두 부러워한다면 그 여행은 '대성공'이나 다름없다.

한국관광공사는 매년 '제주의 사진 명소'를 선정한다. '이곳에서 사진 찍고 가세요'라는 의미다. 누군가 내게 '초여름 제주에서 사진 찍을 곳을 추천해 달라' 묻는다면, 고민 없이 수국길을 택하겠다. 지금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장면이므로.

제주 동남부 편에 이어 이번에는 제주 서남부의 수국 명소를 소개한다.

배려 깊은 소품이 돋보이는 곳, 안덕면사무소

안덕면(安德面)은 안덕 계곡에서 명칭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이곳에는 10개의 법정리와 12개의 행정리가 소속돼 있다. 화순리 패총, 대평리 고인돌, 안덕계곡의 동굴 집자리 유적 등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덕면은 제주의 서부를 아우르는 지역으로 서쪽은 대정읍, 동쪽은 서귀포와 경계한다.
 
서귀포시 안덕면사무소가 명성을 얻은 건 수국 때문이다. 면사무소에서 안덕 119안전센터까지 1.5㎞ 구간에 이어진 수국길이 네티즌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그냥 뒀으면 시들해졌을 터, 면사무소 직원들이 힘을 합해 사진 찍기 좋게 소품까지 배치했다. 더구나 수국 미니 축제까지 개최해 전국의 수국 마니아를 불러 모으고 있다.
 
꽃을 위한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올해는 '수눌음 헌혈 미니축제'가 세계 헌혈자의 날인 6월 14일 안덕면사무소에서 열렸다. 주민들은 '좋은 일에는 남이요, 궂은 일에는 일가라'하지 않고 모두 나와 도왔다.

도로에 핀 수국들이 흰색과 하늘색의 경계를 오가며 청량감을 더한다. 토양마다 다른 색 꽃을 피우는 수국. 허브향을 품은 이름 모를 풀들이 나지막이 깔려 있다. 입장료를 받는 공원 부럽지 않은 소품도 가득하다.

산방산이 배경, 사계리 수국길

사계리 수국길은 사계리 해안의 수호자인 산방산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날 수 있다. 도로 위의 수국과 산방산이 배경인 사진 명소다. 산방산은 밥공기를 엎어놓은 듯 둥글게 누워 있다. 여름의 초입에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다. 수국의 화사한 웃음과 만나기 위해서다.
 
강렬한 햇살에 더욱 빛을 발하는 수국을 만나볼 수 있다. 핑크빛부터 하늘색까지 다양한 색감을 볼 수 있는 사계리 수국길. 대표적인 수국길인 만큼 드라이브하는 차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기에 각별히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꽃길 밖 도로까지 나가는 행위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사계리에는 대정향교가 있어 선비들의 왕래가 잦았다. 그들의 돈과 귀중품에 눈독 들인 도둑들이 길목을 지키다가 강탈을 일삼아 처음에 거물로(巨物路)로 불렸다. 그 후, '거문질'로 변했다. 도둑으로 인심이 흉흉해지자, 1840년대에 깨끗한 모래와 시냇물을 비유한 '사계리'로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됐다.
 
사계리 수국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사계리 해안길'의 일부 구간이다. 산방산에서 송악산 쪽으로 가는 길은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길로 꼽히는 절경이다. 그 길에 수국이 더해져 탄성을 자아낸다.
 
대정향교의 적요함... 사색에 잠기다

알뜨르 비행장을 지나 돌무더기가 밭의 경계를 이룬 안덕면 사계리의 대정향교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서자 단산(바굼지오름, 簞山)이 선명히 보인다.
 
단산의 제주 방언인 '바굼지'는 '바구니'를 뜻한다. 오래전 이곳은 바닷물에 잠겨 바구니만큼만 보였다고 한다. 산의 모양새가 박쥐와 엇비슷해 생긴 데서 유래한 말이기도 하다. '바굼지'는 '바구니'의 제주 방언이나 원래 '바구미'였던 것이 '바굼지'와 혼동돼 사용됐다. 바구니의 한자의 뜻을 빌어 '簞山'(단산)으로 표기됐다.
 
대정향교는 조선 시대 향교다. 처음에는 북성안에 있었으나 중간에 동문 밖으로 옮겼고, 다시 서성안으로 옮긴 것을 1653년(효종 4) 이원진 목사가 단산 아래로 이전했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곳이다. 그의 유배지도 2㎞ 남짓 떨어진 곳에 있다. 제주향교, 정의향교와 함께 제주 3대 향교다.
 
대성문을 통해 향교로 들어섰다. 문이 낮아 허리를 낮춰야 통과할 수 있다. 맞은편의 동정문, 대성전 뜰의 전향문과 퇴출문도 그 높이가 낮아 몸을 굽혀야 한다. 사당인 대성전은 북쪽에 위치해 그 위엄을 자랑한다. 명륜당 좌우로는 동재와 서재가 있다.

명륜당 서재 방향의 앞마당에 수국 한무더기가 화려하게 꽃핀 채 있다. 가히 화룡점정이라 하겠다. 향교에 맞게 고혹한 푸른빛을 발산하고 있다. 적요함이 가득해 향교에서 잠시 사색에 잠긴다.

나만 알고 싶은 장소, 안성리 수국길

제주 서부에 숨겨진 수국 명소가 있다. 2년 전까지는 여행자들에겐 낯선 곳이었는데, SNS에 올라온 후 더는 비밀 장소가 아니게 됐다. 제주 특유의 검은 돌담 사이로 알록달록하게 핀 수국이 사진 배경으로 알맞은 곳이다. 수국 마니아들에게 '나만 알고 싶은 장소'로 여겨졌던 곳이지만 역시 비밀은 오래 못 간다.
 
금방 비가 내린 터라 길 위로 물들이 고여 있다. 물빛에 수국이 반사돼 바닥도 울긋불긋하다. 하얀 집과 돌담, 수국이 어우러진 풍경이 멋스럽다. 한적하고 소담스러운 풍경이 점점 알려져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북적인다. 주말엔 좁은 골목이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굽이굽이 돌담에 핀 보랏빛 수국의 화려함이 그야말로 극치다. 관광지가 아닌 작은 동네 골목이 이렇게 유명해진 데는 이유가 있다. 일단 입장료가 없다. 그리고 어느 곳보다 제주답다.
 
제주답게 워낙 좁은 길이라 주차공간이 거의 없다. 그래서 차는 마을 입구에 잠시 세워두는 걸 잊지 말길 당부드린다. 당연히 주차 공간이 없다는 걸 여러 블로그나 SNS 이용자들이 알려 방문자 본인도 알 터인데, 굳이 차를 끌고 수국이 핀 골목 안까지 들어오는 분들이 있다. 그들의 이기심에 다시 이곳을 볼 수 없을 수도 있다. 제주에 그런 곳이 꽤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안돌오름의 비밀의 숲, 홍가시나무숲 등이다.
 
안성리 수국길은 노부부가 수국을 직접 심고 6년 동안 가꿨다고 한다. 그들의 정성과 배려로 이곳에서 수국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정성 들여 가꾼 수국길로 눈이 호강한다. 이곳은 주민들이 거주하는 삶의 공간이다. 무릇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사진을 찍다 보면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해 개인의 편리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를 비롯해 우리가 모두 반성해야 한다.
 
파란 지붕에 영근 수국과 성이시돌목장

중산길은 좁고 고즈넉하다 못해 황량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꾸미지 않은 거친 자연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내비게이션은 성이시돌센터에서 멈췄다. 주위를 둘러보자 차분한 정원과 호젓한 산책로 사이로 건물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새미 은총의 동산, 삼위일체 대성당이 이국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잔잔한 묵상 음악이 더해져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수국이 보이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아랫마을로 내려갔다. 5분 정도 가다, 어느 목장에 차를 세우고 그곳 일꾼에게 길을 물었다. 사진 한 장을 보여 주며 이곳이 어딘지 캐물었다. 그는 이곳엔 수국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성이시돌목장 안으로 가보라고 한다. SNS에서도 은근히 비밀 장소로 통하며, 사진을 '반출한' 이에게 댓글로 장소를 물으면 '노 코멘트'라는 답변을 받곤 했던 곳.
 
다시 성이시돌목장으로 향했다. 주차장 쪽에 지어진 카페 우유부단을 둘러봤다. 정물오름을 배경으로 더없이 펼쳐진 목장에 자유롭게 노는 말들이 보인다. 우유 모양의 조형물이 여럿 놓여 있다.

카페 우유부단에서 수국 명소가 있는 곳을 우연히 알게 됐다. 젊음의 집으로 향했다. 처음 우리가 도착했던 성이시돌센터 반대편이다. 막상 수국 핀 곳으로 가자 버스까지 대절해 관광 온 팀도 있어 허무했다.

이곳 수국의 매력은 땅까지 끌리는 탐스러운 수국이다. 파란 지붕을 배경으로 연분홍, 하늘색 수국이 영근 모습이 이국적인 곳이다. 올해는 작황이 좋지 않아 수국 꽃송이가 작다. 수국은 작은 꽃잎이 모여 풍성한 자태를 뽐내는 꽃이다. 비가 내린 탓에 수국이 촉촉하게 빗방울을 머금고 있다. 초여름 내리는 비는 수국을 더욱 아름답게 물들인다. 이곳 수국은 오묘한 분위기를 뽐내고 있다.
 
손바닥 선인장과 어우러진 제주농업기술원 서부농업기술센터

월림리 마을에서 '더 마 파크' 가는 길에 제주농업기술원 서부농업기술센터가 있다. 농업기술센터를 중심으로 길 한쪽에 수국이 일렬로 쭉 뻗어 있다. 이곳 역시 입장료가 없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가는 곳곳마다 수국이 몽글몽글 피어, 보는 자체로 마음이 치유가 되는 듯하다. 2013년부터 잡풀로 무성했던 대로변 1㎞에 수국을 심어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제주 수국 명소로 알려진 종달리나 위미리 군락보다 아직 나무가 어려 풍성한 느낌은 없지만, 꽤 긴 편이다. 드라이브 코스로는 안성맞춤이지만 내려서 사진 찍기엔 갓길이 없어 위험천만하다. 심은 지 얼마 안 돼 키도 작달막하다. 하지만 다양한 종의 수국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이곳 수국길은 손바닥 선인장 밭을 끼고 있어 다른 지역의 수국길과 차별화된다. 수국도 보고 선인장도 감상할 수 있어 꿩 먹고 알 먹는 격이다. 도로변 수국 너머 밭에서는 초콜릿의 원료가 되는 손바닥 선인장이 싱그럽게 자라나고 있다. 마침 선인장 밭은 6~7월 사이가 개화다. 선인장꽃과 수국이 어우러져 장관이다.

푸름이 더욱 짙어진 초여름의 제주, 수국이 알록달록 온천지를 장식하고 있다. 심지어 반짝반짝 빛나는 제주 바다까지. 그 싱그러운 자연 속에서 몸도 마음도 맑아지는 기분이다.

이번 수국 여행을 통해 제주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됐다. 여유 없는 빡빡한 스케줄을 따라 움직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직도 가 보지 못한 수국 명소 리스트가 있다. 다시 제주도를 가야만 하는 이유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 해에는 수국을 배경으로 리마인드 웨딩 사진을 찍어볼까 한다.

*마음이 머무는 벵디1967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은 집이다. 집처럼 머물 수 있는 안식처를 찾아 여행자들은 헤맨다. 자신의 오롯한 시간을 기대하며... 여행지를 누비는 만큼 머무르는 공간에 대한 기대도 크다. 바로 제주 여행에서 만난 ‘벵디1967’이 그런 곳이다. 아담하지만 그림처럼 아름다운 해변과 제주 토속적인 옛집들이 많은 제주 구좌읍 평대리에 있는 공간으로, 제주의 바람과 돌, 꽃이 노래하는 편안한 안식처이다. 주인장은 제주에서 운명처럼 모든 걸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 덜컥 섬 생활을 결정했고. 그가 머문 곳에 ‘벵디1967’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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