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Updated. 2020-02-27 03:05 (목)
"윤이상, 죽어서도 용서 못할 죄 지었을까"
"윤이상, 죽어서도 용서 못할 죄 지었을까"
  • 류혜영 기자
  • 승인 2018.03.0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이상 간첩 주장에 대한 취재 후기
윤이상 /사진제공 통영국제음악재단
윤이상 /사진제공 통영국제음악재단

지난달 25일 윤이상 선생이 고국을 떠난 지 49년, 사망한 지 23년 만에 고향 통영으로 돌아왔다.

정부와 통영시, 민간단체 등이 협력해 어렵사리 이뤄낸 '귀향'은 윤 선생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진행됐다.

그러나 통영시 애국시민총연합회 박청정 상임 공동대표는 지난달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윤이상은 간첩"이라고 단정하며 유해 송환을 반대했다.

그가 기자회견에서 밝히거나 일부 언론에 제공한 내용이 단순 보도되고 있어 사실 확인을 해봤다.

-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동백림 사건)
박 대표는 "윤이상 선생이 1969년 2월 복역 중 형 집행정지로 가석방돼 추방형식으로 출국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세계적 예술가 200여 명의 국제적 항의와 독일 정부의 방한 등의 조력 때문에 1969년 2월 25일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므로 박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사면복권 시켜 입국시키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박 대표는 "윤이상 선생이 유명한 음악가여서가 아니라 국정원이 독일 정부 몰래 윤 선생을 잡아 왔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약소국의 비애를 감내하며 되돌려 보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당시 윤이상 선생은 1964년 '옴마니 팟 메훔', 1966년 '예악'을 발표하면서 이미 국제적 지위와 음악적 업적을 인정받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에 납치된 윤 선생을 위해 이고리 스트라빈스키 등 세계적인 예술가 200여 명이 구명운동을 펼쳤다.

박 대표는 "김영삼 정부조차 윤 선생의 귀국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문민정부는 여러 번 특사를 보내 귀국 의사를 타진했다. 문민정부는 사건 진상이 조사되지 않은 상태라 국민 정서를 고려해 윤 선생에게 무리하게 사과를 요구했고, 이를 거절하자 귀국이 안 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참여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6년 1월 26일 "(1967년 대통령선거의 부정선거 의혹 확산을 막기 위해) 당시 정부가 단순 대북접촉과 동조행위를 국가보안법과 형법상의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해 사건의 외연과 범죄사실을 확대·과장했다"고 밝히고, "사건 조사 과정에서의 불법 연행과 가혹 행위 등에 대해 사과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박 대표는 이를 "다소 과장된 감은 없지 않으나 조작은 아니다. 실체가 있는 간첩 사건임을 분명히 했다"고 왜곡했다.

'귀천'이란 시로 유명한 천상병 시인은 이 사건에 연루돼 온갖 고문과 인권 유린으로 평생을 폐인처럼 산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천 시인은 '막걸릿값을 빌린 친구가 간첩혐의로 수사기관 대상이라는 걸 알고도 친구를 협박해 돈을 갈취하고 수사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다'며 간첩죄로 형을 살았다.

- 1992년 오길남 간첩 사건
1985년 가족과 함께 월북했다가 1992년 귀순해 윤이상 선생이 자신을 북한에 보냈다고 주장했던 일명 '오길남 간첩 사건'에 대해 박 대표는 "오길남 간첩 사건 수사결과 윤 선생이 북한의 조종을 받고 있는 북한의 문화공작원이라고 규정했다"고 말했다.

윤이상 선생이 생존해 있을 때는 이 사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등 대처를 했지만, 윤이상 선생이 사망한 후 오길남 씨의 일방적인 주장이 사실인 양 보도됐다.

그러나 이 사건을 수사한 공적인 기관도 없을뿐더러 윤이상 유족 측이 2012년 오길남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지만 오 씨가 법정에 출석하고 있지 않아 재판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유족 측은 윤 선생의 부인 이수자 여사가 생존해 있는 동안에라도 하루빨리 재판이 진행되고,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하고 있다.

한 시민은 "대한민국이 분단되기 전에 태어난 윤이상 선생에게는 북한이나 남한이나 같은 조국이었다. 예술적 동기에 의해 북한을 방문한 사실이 간첩 활동으로 둔갑한 것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까지 이용되는 '간첩 만들기(일명 종북 프레임)' 중 하나"라며 "이는 이데올로기 시대를 살아온 희생양의 표본"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박 대표는 기자회견이 끝나갈 때 즈음 "어쩌면 윤이상도 희생양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왜곡된 사실을 진실인 양 퍼트리는 일 또한 고인과 유족들에게는 폭력이자 인권 유린의 고통이 될 것이다. 더 이상의 희생양은 없어야 한다.

'국가안보'라는 명분을 앞세워 국가가 국민에게 자행했던 폭력과 인권 유린의 역사적 진실이 밝혀지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그토록 그리던 고향 통영을 죽어서 돌아온 것마저 그에게는 억울하고 가혹한 형벌이었을지 모른다. 그가 그런 형벌을 받을 만큼 고향 후배들에게조차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는지 묻고 싶다.

통영국제음악재단 플로리안 리임 대표가 이수자 여사에게 윤이상 선생 유해를 전달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플로리안 리임 대표가 이수자 여사에게 윤이상 선생 유해를 전달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지연 2018-03-05 13:57:48
고맙습니다.